[98/4월호] 야생동물/ 괭이 갈매기

사라져가는 한국의 야생동물

외다리 갈매기의 사랑 이야기
박시룡/한국교원대 생물교육학과 교수

충무 앞바다의 작은 섬들을 뒤로 한 채, 한 시간 가량 배를 타면 형제처럼 마주한
매물도와 소매물도가 보인다. 이곳까지는 정기여객선으로 닿을 수 있지만 다시 지금
까지 온 거리를 더 가야하는 홍도까지는 정기선이 따로 없다. 그런 이유에서 나는
충무에서 고깃배를 빌려타지 않으면 안되었다. 배를 탄 지 거의 2시간이 지나면 망
망대해에 뾰족하게 솟아 있는 무인도가 보인다. 아직도 이쯤에서는 이 섬에 갈매기
가 산다는 징후는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섬꼭대기에 흰건물의 등대가 그 모습을
드러낼 때면 기암절벽과 바다를 넘나드는 갈매가 떼가 보이기 시작한다.
배를 보내고 관찰에 필요한 장비를 질머진 채 1백50여 미터나 되는 가파른 층계를
올라서자 섬이 한눈에 들어왔다. 불과 1미터 정도의 간격을 두고 수만마리에 달하는
갈매기들은 번식을 위한 집단적인 의식을 치루고 있었다. 우거진 사초(일명 갈매기
풀) 사이에는 조잡하게 깔아 가슴으로 눌러 밥그릇 만한 둥지들이 있었다. 알들이 엷
은 녹색 바탕에 갈색 점무늬로 덮여져 있었기 때문에 적의 눈에 띄기란 쉽지 않다.

숭고한 사랑의 곡예
나는 준비된 위장망을 한 평 남짓한 절벽의 돌출부 위에 설치해 놓고 사방으로 뚫
어진 구멍을 통해 갈매기 무리들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위장
막 아래로 바라보이는 절벽 위로 다리 하나가 없는 수컷이 암컷과 사랑을 속삭이고
있었다. 처음에는 그져 다리 하나를 몸속에 감추고 있는 줄로만 알았다. 그러나 짝지
을 순간 그 수컷은 암컷의 둥에 한 다리로 올라서서 양쪽으로 펼친 날개로 균형을
잡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 절벽 아래쪽은 1백여 미터의 낭떠러지, 내려다 보기에도
아찔한 광경이었다.
그러나 불과 손바닥 넓이의 절벽 위에서 이루어지는 불구 갈매기의 사랑은 완벽했
다. 암컷은 접은 잘개를 아래고 내려 이 수컷의 생식기(배설공)를 받아들일 준비에
들어갔다. 수컷은 아래로 내린 암컷의 날개 사이로 꼬리를 접어 배설공을 서로 맞닿
게 했다. 이것은 1백여 미터 절벽 위에서 연출되는 지상 최고의 곡예였다. 바로 이런
곡예를 정상적인 갈매기들도 여러번 반복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을 이 불구의 수컷
괭이갈매기는 한번의 실수도 없이 해내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수없이 반복되는 외다리 갈매기의 사랑곡예는 암수의 배설공을 맞닿게 해
가볍게 누르는 데서 절정을 이룬다. 수컷의 울음소리는 이 사랑의 절정에 더욱 요란
해진다. 바로 2∼3초간의 짧은 생식기의 접촉이 1회 짝짓기에 무려 5, 6번 정도가 지
속되어야 수컷은 펼친 날개를 점잖게 접고 암컷의 등에서 내려온다. 그러나 이 외다
리 갈매기의 사랑의 연출이 아무 대가없이 치러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들이 이러한 사랑의 곡예를 연출하기까지는 부부간의 정확한 의사소통이 있어야
한다. 아내가 남편에게 다가가 머리를 몸속에 집어넣고 고개를 위 아래로 흔들어 신
호를 보낸다. 이때 아내의 부리가 남편의 부리 위로 올라가게 해서는 안되는 규칙을
이 부부는 잘 알고 있었다. 이것은 갈매기 세계에서 일종의 복종의 자세이자 상대에
게 요구할 때 쓰는 규칙적인 행동이다. 마치 두 마리의 갈매기가 귀속말로 사랑을
속삭이는 것같이 보였다.
이들의 속삭임은 시간이 갈수록 더욱 잦아지고 또 목쉰 소리로 바뀐다. 암컷의 애절
함을 금방 느낄 수 있었다. 암컷의 이 행동에 수컷은 대개 두가지로 반응한다. 뱃속
에 담고 있던 물고기를 게워내든지 그렇지 않으면 수컷도 함께 고개를 위 아래로 흔
들어 굵은 목소리로 대답을 한다. 이런 갈매기가 먹이를 게워내는 것은 암컷의 마음
을 사기 위한 일종의 선물인 것이다. 바로 이 수컷의 선물공세에 남편의 사랑을 확
인한 암컷만이 몸을 허락하게 된다.
가끔 갈매기 부부간에 아내가 먹이를 달라고 애원하면, 성급한 남편은 먹이를 게워
내지 않고 곧장 짝짓기로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아내는 이를 거절하고 만
다. 남편이 성급하게 등 위로 올라왔어도 균형을 잃게 하여 등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런 몸싸움을 나는 위장막 속에서 흔히 관찰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 불구의 남편
에게서는 이런 몸싸움을 볼 수 없었다. 아내가 소리를 내면서 고개를 흔들어 보이자
남편은 곧바로 아내 곁에 한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다가가 먹었던 물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게워내주는 것이었다. 아내는 이를 재빨리 받아먹고는 남편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던지 아무런 반항도 없이 등을 허락했다.

외다리 갈매기의 자식 사랑
이런 일이 있은 후 나는 이 외다리 갈매기 부부가 같은 장소에 3년씩이나 찾아 온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갈매기들은 한번 짝이 정해지면 부부 중 한마리가
일찍 죽게돼 짝이 바뀌지 않는 한, 평생 함께 사는 것이 특징이다. 그것도 이 부부가
작년과 제작년에 보았던 장소에서 또 번식하고 있다는 사실은 나로 하여금 다른 갈
매기쌍들에게도 이런 규칙성이 있는가에 대한 의심을 갖게 한다. 그것은 우선 많은
갈매기쌍에게 표시을 해서 그들이 다음해 또 그곳에서 둥지를 트는가를 관찰해봐야
할 것 같다. 어쨌튼 나는 이 외다리 갈매기에 더욱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다른 갈매기쌍에 비해 이 외다리 갈매기 수컷이 아내를 위하는 마음이 남다르다는
사실에 진한 인간적인 감동을 느끼게 했다. 다른 갈매기쌍은 번갈아 가며 알을 품고
있는데, 이들은 알품기를 이 외다리 수컷이 혼자 감당하고 있었다. 그 뿐만이 아니었
다. 행여 그 알을 탐하는 침입자라도 나타나면 대개의 부부는 암컷이 공격적인 것에
비해 이 외다리 부부는 수컷이 공격적이었다. 이 공격성은 아주 대단하다. 마치 전쟁
터에서 포탄을 장착한 전투기가 목포지점을 향해 하강비행을 하여 포탄을 떨어뜨리
듯 이 외다리 갈매기는 침입자를 향해 원을 그리면서 처음에는 한쪽다리로 일격을
가하지만 그래도 이 침입자가 물러가지 않으면 그때는 필사적으로 공격을 가한다.
괭이갈매기 특유의 뾰족한 부리가 목표물에 명중하면 사람의 머리라도 피를 흘리는
일이 종종 생긴다.
이들 부부의 귀여운 새끼가 태어난 때는 6월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였다. 두 마리
의 새끼는 태어난 지 만 이틀 동안이나 이 어미 곁에서 꼼짝않고 있더니 만 3일째
되던날 자기들이 태어난 요람 옆 풀더미 속에 자리를 잡았다. 사냥갔다가 돌아온 외
다리 아빠는 고양이 소리를 내어 풀더미 속에 있는 새끼들을 부른다. 어미의 소리를
듣고 달려온 자식들은 어미의 부리 끝 붉은 반점을 부리로 건드려 어미에게 먹이를
달라는 신호를 보낸다. 처음의 먹이는 목구멍 속에서 거의 소화된 먹이가 나오지만
이 새끼들이 나이가 들자 어미는 좀더 커다란 먹이를 게워내는 것이다. 가끔은 작은
물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주기도 했다. 그럴 때면 먹다 남은 먹이는 엄마 갈매기가
먹기도 했다. 지금도 건강하게 태어난 두마리의 새끼와 아내를 위해 불편한 몸을 이
끌고 먹이를 찾아 높이 높이 날고 있다.
그러나 이 섬 주변에도 먹이가 줄어들고 있다. 언제 부터인지 어부들은 해양 경찰의
단속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잔 그물을 던져 이 주변의 물고기를 잡아갔다. 수 백만
년을 이 섬에서 살아온 괭이갈매기들이 요즘은 주변에 찾아온 어선들이 버린 물고기
로도 생계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래서 사냥나간 어미가 돌아올 시간이 넘었어
도 돌아오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보면 이미 새끼들은 허기진 채 이웃 갈매기
집(터)으로 들어가 기웃거린다. 그러나 갈매기들은 자기 새끼가 아니면 모두 적으로
간주하는 습성을 갖고 있다. 사람의 눈으로는 식별이 안돼도 이들은 다른 새끼임을
알고 부리로 찍어 쫓아낸다. 뒤로 물러설 곳이 없는 이 섬에서는 대개가 가파른 절
벽으로 떨어져 죽는다. 이렇게 죽는 새끼들을 이 섬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중
의 하나다. 대개 머리에 상처가 난 것들이다. 이제 이 섬은 갈매기들의 낙원이라는
말도 옛말이 되었다. 천연기념물 335호로 지정되어 있지만 번식기철에는 알을 훔치
러 오는 사람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이대로 간다면 불과 몇년 사이에
괭이갈매기들은 이 섬을 영원히 떠나버릴 것이다.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3 0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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