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의 변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주말이면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는 서울 서촌의 옥인길 ⓒ김한울
 
서촌. 10년 전, 영화 『효자동 이발사』를 통해 청와대 옆 동네로 알려진 곳이다. 조선시대부터 집이 들어서고 골목마다 이름이 붙어 동 이름만도 열다섯을 헤아린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름은 역시나 ‘효자동’이고, ‘옥인동’, ‘사직동’, ‘통의동’ 같은 동네 이름이 종종 뉴스를 탔다. 동네 주민이 아니면 길을 지나는 것조차 자유롭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문민정부 출범’이라는 이름에 구색을 맞춘다 하여 누구나 마음 놓고 오갈 수 있는 동네가 된 것이 불과 20여 년 전의 일이니, 그전까지는 서울의 한 복판에 자리하고도 고적하기 짝이 없는 동네였다. 사정이 이러하다보니 이웃은 모두 오래됐고, 동네는 시골처럼 정감이 있었다.
 
 

옛 모습 찾아 나선 사람들

 
서촌뿐만 아니라 사대문 주변 동네들이 대개 그랬다. 낡은 한옥의 처마가 하늘을 받치고 있고, 깨진 보도블록 위로 아이들이 뛰어노는 동네가 시내라고 다를 것 없었다. 북적이는 종로바닥, 막걸리 냄새나는 피맛골에서 한 걸음만 뒤로 물러서도 발자국 소리 들으며 걸을 수 있는 조용한 골목들이 펼쳐지고 있었다.
 
새로 지어진 아파트,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 반듯하게 지어진 현대식 상점가. 이런 것들이 지루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던 탓일까. 도심의 조용한 골목마다 시나브로 전에 없던 발걸음들이 잦아지기 시작한 것이 아마도 10년은 족히 넘어선 때의 일이다. 그 처음은 인사동에서 시작됐다.
 
골동품상들이 모여 있어 옛 향취를 느낄 수 있는 거리. 사람들은 옛 추억이 서린 물건들이 즐비한 그 길을 비만 오면 질척대는 진창길도 마다하지 않고 모여들기 시작했다. 가게마다 성업이었고, 노점도 늘어갔다. 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인사동을 찾는 이유가 됐던 많은 가게들은 북적이는 인사동길의 월세를 이기지 못하고 더 깊은 골목으로 숨어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그 뒤를 쫓았다. 북촌으로, 삼청동으로, 서촌으로 사람들은 점점 더 깊은 골목으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서촌에서도 몇몇 가게가 유명세를 탔다. 지저분하고 지긋지긋하던 요강도 3대를 지내면 골동품이 된다지 않던가. 장사가 신통찮아서 어쩔 수 없이 낡은 간판을 이고 있던 가게들이 먼저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그 간판을 읽으며 옛 생각을 떠올리는 이들, 그리고 복고의 취향으로 오래된 것을 찾아 나서는 이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서촌에서 사는 게 꿈이 되어버린 이들은 서촌으로 향하는 이삿짐을 꾸렸다. 별것 없던 것들이 하나하나 탄성을 자아내는 것이 되는가 하면, 오래된 도시 서울이 잃어버린 오래된 것들이 곳곳에 넘쳐나는 곳으로 재발견되면서 서촌은 점점 더 매력적인 곳으로 다시 태어났다.
 
입에서 입으로 소문은 전해지고, 그 소문이 지면과 방송을 타면서 급기야 동네 사람들에겐 특별할 것 없던 가게들 앞으로 주말마다 동네에서 본 적 없던 낯선 이들이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는 풍경이 한 마디 과장 없이 그야말로 일상사가 되어버렸다.
 
인기를 얻자 아이러니하게도 사라질 위기에 처한 옛 모습들 ⓒ김한울
 
 

인기 때문에 사라지는 아이러니 

 
처음에는 그저 사람이 많아 길이 복잡한 정도였다. 그 사람들이 조용히 골목만 걷고 돌아가는 게 아닌 이상, 잠시 앉아 쉴 곳이 필요했을 것이다. 차를 마시는 카페가 들어서는가 싶더니 주점과 식당이 하나씩 들어섰다. 그렇게 속속 들어서는 새 가게들에 자리를 내주는 곳들은 대개 슈퍼마켓, 세탁소, 피아노 학원, 보일러 수리점, 신문 보급소 같은 곳이었다.
 
서촌에서 가장 아이들이 많이 사는 골목에서는 급기야 슈퍼마켓만 세 개, 세탁소도 두 개가 사라졌다. 하나같이 수십 년 동안 이웃과 부대끼며 삶을 이어가게 해주던 자리였다. 그 자리엔 빠짐없이 모던한 디자인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섰다. 하지만 매일같이 서촌을 처음 찾아온 이들이 그 사정을 알 리는 없었다. 수십 년의 시간이 비워진 자리에 새로 들어서는 가게들조차 마찬가지였다. 옛 모습을 보겠다는 발걸음이 오히려 옛 모습을 재촉하여 내쫓고 있는 셈이다.
 
10년이 넘도록 월세 30만 원이면 충분하던 골목이 3년 새 월세 120만 원도 비싸지 않은 골목이 되어버렸다. 이토록 급격한 변화를 견딜 수 있는 가게는 많지 않다. 덩달아 집세도 올랐다. 서촌 집세를 감당하지 못해 삼청동으로, 평창동으로 이사를 떠날 지경이다. 가장 급격하게 변화를 겪고 있는 탓에 열병을 앓고 있다고 해도 좋을 ‘옥인길’의 경우, 실제로 자기 건물에서 직접 가게를 운영하는 경우가 아닌 이상에야 단 한 가게도 빠짐없이 모두 문을 닫았다. 직접 운영하는 가게도 치솟는 월세 수입에 벌이가 변변치 않은 가게를 비우고 속속 사라지고 있다.
 
다시 인사동을 떠올려보자. 인사동길이 북적이기 시작하면서 떠날 수밖에 없던 이들. 그들 중 일부가 서촌을 찾았더랬다. 그리고 사람들은 더욱 깊숙이 밀려들었고, 인사동길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그대로 서촌에서도 반복되고 있다. 쫓겨난 이들은 늘 쫓겨 다녀야 하는 처지가 된 것이다. 그 사이, 삶의 터전에서 그들을 맞이하는 이들 또한 그 거스를 수 없는 물살에 휩쓸릴 수밖에 없다. 처음에는 작은 흙 한 줌에서 시작한 산사태가 점점 흙더미로 커지는 것과 같다. 처음 흘러들어 온 흙 한 줌을 탓할 일은 아니겠지만 맞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재앙에 다를 바 아니다.
 
 

북촌의 전철을 밟을 것인가

 
도시를 연구하는 전문가들은 이렇게 원래의 동네가 새로 들어온 사람들에 의해 새롭게 바뀌는 현상을 일찌감치 발견하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이라는 이름을 붙여두었다. 산업혁명 이전의 영국에서 생겨난 말이라고 하니 지금 서촌이 겪고 있는 문제가 참 오래 묵은 문제인 셈이다. 게다가 세계적인 문제이기까지 하다.
 
서촌의 급격한 변화를 먼저 겪은 곳이 있다. 북촌이다. 인사동은 처음부터 상업 중심이었던 것에 비해 북촌은 서촌과 마찬가지로 주택지였다. 지금도 여전히 주택지이지만, 카페와 레스토랑, 게스트하우스, 세컨드하우스가 구석구석을 차지해 실제로 북촌에 생활하는 인구는 10동짜리 아파트 한 단지 정도에 불과하다. 생활인구가 적어지니 밤이면 인적이 사라져 치안도 문제가 된다. 밤이면 도저히 혼자 골목길을 걸을 수 없어 늘 전철역에서 남편을 만나 귀가한다는 어느 북촌 주민의 호소는 어떻게 들어도 로맨틱하지 않다.
 
북촌의 고민은 좀 더 깊어지고 있다. 동네 입구에 호텔을 지으려는 대기업이 동네에 자리한 중·고등학교까지 내보낼 기세인 탓이다. 인구가 줄어드니 학생 수가 줄어들고, 학교도 그 동네 학생이 많은 것도 아니니 굳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일까. 호텔 계획이 추진되기 시작한 이후로 학교가 하나씩 사라질 것이라는 소문에 북촌 주민들의 가슴앓이는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이미 한 학교는 동네를 떠날 계획이라고 한다.
 
서촌과 북촌은 이웃동네다. 곁에서 바라본 이웃 동네의 잔혹사는 서촌도 긴장하게 만들었다. 속속 카페와 갤러리가 들어서던 때에 서촌 주민들은 북촌을 떠올리며 걱정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몇 해가 지난 지금에 와서는 그 우려가 차차 현실이 되고 있다. 오래된 가게들이 거의 멸종되다시피 사라지고 있는 것은 물론 세탁소, 슈퍼마켓과 같이 생활편의에 직결되는 업종까지 사라지면서 일상생활의 불편까지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다.
 
불편한 생활 여건뿐만이 아니다. 가게세가 오르며 가게들은 그나마 부담이 덜한 골목 안쪽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집이 가게로 바뀌기 시작하면서 집세도 오른다. 가게가 들어서느라 사람이 살 집이 줄어들기 시작하는 것을 보면 서촌의 인구도 내리막길을 걷게 될까 하는 걱정은 더 이상 기우가 아니다. 낮이면 북적대지만, 밤이면 인기척이라고는 찾을 수 없는 동네. 도심의 공동화.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도시의 생명력이 사라지고 있다.
 
슈퍼마켓과 세탁소 등 주민을 위한 가게들은 사라지고 카페와 레스토랑 등이 생겨났다 ⓒ김한울 ⓒ함께사는길 이성수
 
 

서촌의 본질을 지켜야

 
모든 젠트리피케이션이 도심 공동화를 초래한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보면 서촌의 젠트리피케이션은 도심공동화까지 동반할 수 있는 걱정스러운 변화임이 틀림없다. 서촌을 삶의 터전으로 삼아 시간을 가꾸고 일궈 온 주민들, 그렇게 유지되어 온 이웃 공동체가 자본의 흐름에 밀려 나간다면 그 대신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땅값과 임대료가 오르면 부동산 소유주의 자산은 점점 더 탄탄해질 것이다. 그리고 주말의 데이트코스를 고민하는 연인들에게는 시간을 보낼 곳이 한 곳 더 늘어날 것이다. 하지만 삶의 온기가 가신 곳에서는 그 모두가 시한부일 수밖에 없다. 이유는 간단하다. 사람들은 서촌이 그저 쇼핑하기 좋아서, 혹은 데이트하기 좋아서 찾기 시작한 것이 아니다. 오랜 시간을 지켜온 삶의 모습들을 구석구석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에 찾아온 것이다. 그 이유를 파괴하는 변화는 결국 스스로를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
 
서촌의 변화에는 브레이크가 필요하다. 더는 쫓겨나는 이들을 만들지 않을 수 있는 브레이크 말이다.

김한울 서촌주거공간연구회 사무국장 bodkso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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