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으로 기후변화시대 넘기? 목숨 건 도박

핵으로 기후변화시대 넘기?
목숨 건 도박

 

이은선 기후변화행동연구소 연구원 veinticinco@hanmail.net


에너지’라는 말이 최초로 문헌에 등장한 것은 기원전 4세기경의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서이다. 그리스어 ‘에너제이아(energeia)’는 ‘영향을 미치는 힘’, 즉 ‘영향력’과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오늘날 에너지는 그 어원이 의미하는 것처럼 기존의 사회와 경제가 올바로 유지되기 위한 가장 큰 전제이며 새로운 사회를 구축할 수 있는 힘이기도 하다. 이렇게 중요한 것이 에너지이지만 무엇을 어떻게 에너지로 활용하느냐에 따라 부정적인 영향이 매우 클 수도 있다.


적절한 예가 기후변화와 관련된 문제다. 현재 기후변화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지구생태계가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의 온실가스 배출이고 그 원인에는 석유를 중심으로 한 과도한 화석연료 에너지의 생산과 소비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현재 기후변화 대응의 최전선에는 에너지 문제가 부각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에너지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핵발전을 석탄·석유와 달리 이산화탄소 배출이 없는 ‘깨끗한’ 에너지 생산법이라고 주장하면서 국가 에너지 정책에 포함시키려는 시도에는 문제가 있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원전사고와 같은 참사 위험은 말할 것도 없고 이미 핵발전은 우라늄의 채취 및 가공, 원자로의 운영에서 핵폐기물의 처리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에 걸쳐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위험들로 인해 ‘지속가능성’과는 한참 거리가 먼 것으로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가속화되는 탈원전의 세계적 흐름
핵발전은 1950년대 이후 세계 일부 지역에서 급속하게 늘어나는 자국의 에너지수요에 따른 ‘전력결핍’에 대한 우려나 ‘오일쇼크’에 따른 충격, 석유 등 에너지원의 해외의존도 감소 등의 이유로 화석연료의 ‘대안’으로 홍보되었다. 그러나 재생가능에너지 정책과 기술의 발전 속도가 빨라지고 재생가능에너지의 경제성이 하루가 다르게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핵발전은 더 이상 ‘지속가능한 저탄소사회를 위한 에너지’라는 오늘날의 시대적 요구에 걸맞지 않다. 조금씩 저물어가던 핵발전시대의 최후를 상징하는 것이 바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였다.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세계는 급격한 탈원전의 길을 걷고 있다. 지난 6월 8일에 열린 ‘에너지 대안 포럼 발족식 및 국제세미나: 후쿠시마 이후 대안적 국가에너지비전의 모색’에 소개된 각국 에너지정책의 흐름 역시 이러한 사실을 확인해 주었다.

세계 탈원전 흐름의 선두에 있는 독일은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22년까지 원전 17기를 모두 폐쇄하고 2050년까지 전력의 100퍼센트를 재생가능에너지로만 공급하겠다는 결정을 내렸다. 원전사고의 당사자인 일본 역시 후쿠시마 사고가 커다란 전환점이 된 것으로 보인다. 핵발전에 대한 기존의 입장과 자세의 전환이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나오토 간 총리는 2020년까지 전력의 20퍼센트를 재생가능에너지로 공급하겠다고 발표했다. 그 배경에는 핵발전과 태양광의 발전단가가 가까운 미래에 역전될 것이라는 인식이 큰 역할을 하였다고 한다. 또한 재생가능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할 경우 동북부 지방인 도호쿠 지방의 전력을 2020년까지 100퍼센트 재생가능에너지로 충당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다. 일본 핵발전발전의 현황 역시 이러한 전망의 실현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원자로사고 이후 약 15퍼센트의 전력만이 핵발전을 통해 공급되고 있으며, 일본 내에 원전은 19기만 가동중이지만 이들이 모두 중단되더라도 전력공급엔 무리가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이미 일본 원전은 약 20년 전부터 신규건설 없이 노후화되고 있어 원전에 의한 전력 공급은 자연스럽게 감소될 전망이다. 재생가능에너지 투자액의 증가 역시 더욱 빨라지고 있고 무엇보다 국민들이 급진적인 탈원전 정책을 원한다는 점이 핵 없는 미래를 앞당길 전망이다.


이렇듯 세계경제의 선두에 속해 있는 국가들의 선택과는 달리 우리나라는 세계적 흐름 속에서 한발 비켜나 있는 듯한 모습이다. 탈원전 시나리오는 불가능한 것인가? 정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국제세미나에서 발표된 ‘한국의 전력부문 지속가능에너지 시나리오’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시 2050년까지 핵발전을 단계적으로 폐기하고, 재생가능에너지에 기반을 둔 전력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기술적, 경제적으로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시나리오에 따르면 에너지 수요를 줄이고 재생가능에너지에 대해 과감히 투자할 경우 2050년 핵발전과 재생가능에너지의 발전량 비중은 각각 10퍼센트와 82퍼센트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원전확대 중심의 정부 시나리오인 핵발전 52퍼센트, 재생가능에너지 13퍼센트와 매우 대비된다. 두 시나리오의 소요비용에 있어서도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시나리오가 10퍼센트 가량 더 많은 비용을 필요로 하지만 이러한 차이는 핵발전 사고 위험 해소, 재생가능에너지 확대, 환경 개선 등에 따른 편익으로 충분히 상쇄가 가능하며 2050년 경 GDP가 2008년 대비 3배 수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충분히 부담 가능한 비용이 될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에서 발전부문의 온실가스배출 역시 2008년 대비 80퍼센트 가량 줄어드는 편익도 얻을 수 있다.

 

에너지전환 위해 각계 노력 필요
그러나 탈원전 시나리오가 보여준 이론상에서의 기술적·경제적 분석과 실현성이 현실에서 온전한 실천을 담보해주지는 않는다. 탈원전에 기반을 둔 저탄소, 지속가능한 에너지전환을 위해선 여전히 넘어야 할 많은 장애물들이 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정부나 전문가들, 또는 어느 한 집단의 관심뿐 아니라 정치, 경제, 학계, 시민사회 전반에 걸친 공동의 고민과 실천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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