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는 잠들지 못한다 _ 오세호



경주시내에서 보문 호수를 지나 덕동댐을 거쳐 추령재를 넘으면 ‘죽어 호국룡이 되겠다’는 문무대왕의 유택(사적 제158호)이 있다. 매년 수많은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그러나 이곳에는 문화유적의 도시 경주와는 어울리지 않는 ‘험한 것’이 살아 움직인다. 해안을 따라 경주시 양남면에 들어서면 국내에서 가동중인 19기 핵발전소 가운데 유일한 중수로형 핵발전소가 가동중인 것이다. 이들 4기의 중수로 핵발전소는 캐나다에서 도입해, 지난 1983년부터 상업가동에 들어간 것으로 캔두형 중수로들이다. 이 핵발전소들이 지겹게도 사고를 치고 있다. 월성 핵발전소 인근 마을에서 기형 송아지, 기형 강아지, 해양생태계 변화가 잇달아 나타나고 있고, 상당수 주민들에게서는 백내장 증세가 발견되고 있다. 이런 일상적인 핵발전소 밖의 사고 말고 핵발전소 안에서 터지는 사고들 때문에 천년고도 경주는 깊은 밤에도 잠들지 못한다.

중수 또 누출
2004년 9월 14일 오후 11시부터 15일 새벽 0시 10분까지 제6차 계획예방정비를 하던 월성원자력 2호기에서 다량의 중수가 누출되어 27여명이 피폭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한편, 지난 2000년 5월 22일에는 새벽 4시 34분 계획예방정비공사중인 월성 1호기에서 감속재 펌프 밀봉장치의 냉각수 배관 연결부에서 약 20리터의 중수가 누설돼 4명의 노동자가 방사선에 피폭되는 사고가 있었다. 1999년 10월 4일에는 월성핵발전소 3호기에서 중수 누출사고로 22명의 노동자가 피폭당했다. 중수 누출사고는 되풀이되고 있고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발전소 측은 작업자의 실수를 탓하고 있을 뿐 구조적인 안전진단 실시나 사고 재발생을 막기 위한 시설과 시스템 정비는 미뤄왔다.

지난 9월 14일의 중수 누출사고는 계획정비를 위해 정지해 있던 월성 2호기에서 중수가 누출된 것으로 14일 오후 11시부터 15일 0시 10분까지 약 70분간 중수 3085킬로그램 이상이 원자로 내로 누출되는 사고였다. 이번 사고는 작업자가 원자로 내 필터 작업 후 43번 밸브(15개월마다 계획예방정비 때만 사용하는 밸브로 평소에는 개방하지 않고, 운전자의 수작업을 통해서만 작동된다)가 개방된 것을 감지하지 못한 채 중수가 차오르자 집수조 내 습분감지기가 울리게 되어 사고가 알려지게 됐다. 이때 누출된 중수 가운데 무려 8킬로그램(약 8리터) 가량은 회수되지 못했다. 결국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증기 형태로 공기 중으로 새나갔으며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는 기준치 이하라는 이유로 이 사실을 외부로 밝히지조차 않았다. ‘가동정지중에 발생한 방사성 물질 누출사고에 대해서 정보공개지침상의 보고규정은 없다’는 것이 이 사고를 보고하지 않은 데 대한 변명이다. 한국수력원자력과 과기부가 사고 관련 사실을 지역주민은 물론 사회적으로 알리지 않은 탓에 제보를 받은 지역주민들이 발전소를 항의방문해서야 사고 관련 사실들이 밝혀지게 됐다. 사고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핵발전소 사고에 따른 정보공개에 문제점이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시민들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중수 누출사고를 미연에 방지하는 장치를 하거나 투명성 확보를 위해 공개정보 시스템의 보완이 절실하다. 핵발전소의 안전성에 대한 국민들의 높은 관심도를 고려하면, 어떤 사고가 정보공개 대상인가를 따지는 것은 자칫 자의적인 해석에 따라 사고의 심각성이 은폐될 수 있다. 핵발전소 사고는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정보공개 등급에만 치우치지 말고 즉시 공개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그것만이 월성핵발전소 주변에서 살아가는 경주 시민들의 불안감을 일말이나마 해소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폐쇄만이 안전이다
물론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기존 월성핵발전소의 폐쇄이며 추가건설계획의 전면 백지화이다.

캐나다 캔두형 핵발전소는 종주국인 캐나다에서도 폐쇄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캔두형 핵발전소가 가진 설계상의 근본적인 안전성 문제와 더불어 지난 몇 년 동안 숨겨온 캔두형 중수로의 방사능 누출사실이 최근에야 밝혀졌기 때문이다. 현재 캔두형 핵발전소에 대한 캐나다 국민들의 불신은 극에 달해 있다. 한편 한국의 캔두형 중수로 발전소(경주월성)는 다른 핵발전소보다 최고 93배나 많은 방사능을 공기와 물을 통해 내뿜고 있다.

기형가축과 생태계의 변화는 주민들이 피부로 느끼는 위험이다. 최근 몇 년간 원전에서 10킬로미터 이내에 위치한 경주시 감포읍과 양북면에서는 기형송아지 20여마리가 태어나 방사능 오염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또한 “온배수의 영향을 받는 월성 핵발전소 앞 배수구에서는 아열대지방에 사는 갯지렁이가 발견되어 열 오염에 의한 생태계 교란이 극심한 것으로 밝혀졌다”는 해양연구소 이재학 박사의 해양환경평가 연구결과도 보고되었다.

월성핵발전소의 지리적 위치는 근본적인 안전성 문제의 핵심이다. 발전소는 활성단층대의 지진발생지역에 존재한다. 경주는 김해-양산-경주-영해를 잇는 길이 170킬로미터, 너비 1킬로미터의 양산단층에 인접해 있다. 양산단층은 역사상 지진자료를 검토해 보면 월성핵발전소의 내진설계기준을 능가하는 진도 8 이상의 지진이 10회 이상 발생했고, 최근까지 계기지진이 기록되고 있다. “지진의 가능성이 농후한 활성단층”이라는 것이 전문가(서울대 지질학과 이기화 교수)의 주장이다.

시민의 운동으로 핵을 넘는다
월성핵발전소가 가동되면서 30만 경주시민의 안전은 핵발전의 볼모가 되었다. 기형가축 출산으로 기형과 장애의 공포에 떨고 온배수로 인한 어장 황폐화로 생계가 어려워졌으며, 특별지원금을 둘러산 지역공동체의 분열도 뒤따랐다. 지역의 피해는 날로 커지지만, 정부의 대처는 미온적이다. 사고 때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작업자의 단순한 실수”라는 변명은 지겹기만 하다.

환경과 생명의 안전이 전력정책의 편의를 위해 무시되는 현실이 지속될 때 주민들은 ‘직접행동’으로 답할 수밖에 없다. 30만 경주시민과 환동해권 100만 국민은 월성핵발전소의 안전성과 운영 투명성 확보, 월성원전 폐쇄운동, 신월성 1,2호기 추가건설 반대운동을 더욱 강력하게 펼쳐나갈 것이다.


오세호 kyongju@kfem.or.kr
경주환경운동연합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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