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이 된 환경운동가 이항진 “시장이란 욕 듣는 게 일 그래도 ‘주민 중심’으로 일 해야”

이항진 여주시장 Ⓒ함께사는길 이성수
 
2012년 여름, 종로구 누하동 환경연합 마당 한 편에 양변기가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누가 가져다 놓았는지 모른다. 화장실에서 쓰여야 할 변기가 용도 없이 마당에 있었지만, 당시 이명박 정권의 폭압에 맞서 싸움에 몰두하던 시기라 아무도 신경 쓰지 못했다. 양변기는 그저 그늘진 곳에서 잊혀 가고 있었다. 어느 날 누군가 양변기 위아래에 정성스레 흙을 담고 사람들이 먹을 수 있도록 적상추, 청상추를 심어 볕 잘 드는 화단으로 옮겼다. 원래는 양변기지만, 쓰임새를 새로 부여하면서 작은 텃밭이 됐다. 이렇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당시 4대강범대위 상황실장이었던 현 이항진 여주시장이다.
 
10년 전 일화는 이항진 시장의 특성을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다. 때론 엉뚱한 돈키호테 같았지만, 본질을 바라보며 최적의 상황에 맞게 이를 변화시키려 노력했던 게 그였다. ‘활동가는 깨질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라고 한다. 환경운동가 시절 그는 무수히 깨지고 또 깨지면서 껍질을 깨고 단련했다.
 
다른 운동가도 마찬가지겠지만, 그 역시 평범치 않은 삶이었다. 20대 학생운동, 사회운동에 참여했던 그는 1990년 결혼과 함께 여주에 터를 잡았다. 지역에서 사회운동을 벌이던 그는 1990년대 말부터 이천여주환경연합(이후 여주환경연합과 이천환경연합으로 분리)에 결합했다. 당시 여주는 골프장 등 난개발에 몸살을 앓고 있었고, 그가 총대를 멨다. 상근활동가 1명 쓰기도 벅찬 지역단체에서 이항진에게 줄 수 있는 월급이 없었다. 그래도 그는 한 명 한 명 주민을 찾아다니며 이들을 조직했고 개발업자에 맞서 격한 싸움을 벌여나갔다. 경험한 이들은 알겠지만, 몇 년에 걸친 소송, 특히 자본과 권력이 편을 드는 개발업자 대상 주민소송은 사람들을 극도의 피로 상태로 몰아넣는다. 당시 그는 지친 주민들을 보듬으며 끝까지 소송을 이어갔다.
 

환경운동가에서 시의원, 그리고 여주시장으로

 
그의 아내가 남한강 변에서 한식당을 냈다. 건축비 대부분 빚이었지만 그가 공부해가며 직접 설계한 한옥이었다. 한옥은 남한강 변 풍광과 어울려 고풍스러웠다. 비싸지 않으면서 음식 솜씨가 좋아 남한강 맛집으로 소문났다. 여행객도 있었지만, 주로 여주 토박이와 관공서 사람들이 많이 찾았다. 그는 “환경운동을 하다 보니까 강변에서 식당 한다는 게 무척 죄스럽게 여겼었다.”라며 당시를 떠올렸다. 미안한 심정에 여러 사람들에게 무료 식사를 제공했다. 이항진을 만나러 온 환경운동가들도 그중 하나였다. “하루 매출이 10만 원인데 공짜 손님이 30, 40만 원일 적도 있었다.” 그래도 먹고살 수는 있었기에 그는 환경운동에 전념했다.
 
2007년 이명박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던 해 여주에 광풍이 불었다. 한반도 대운하와 4대강사업이 추진되면서 이른바 개발 떡고물을 노리는 세력이 판을 쳤다. 그들에게 이명박 정권에 맞선 남한강 지킴이 이항진은 눈엣가시였다. 나이 어린 개발업자가 그에게 퍼붓는 욕설과 멱살잡이는 일상이었다. 아무 때나 식당을 찾아와 행패를 부렸고, 누군가는 주차장에 못을 뿌리기도 했다. ‘1500년 만의 발전 기회 가로막는 이항진은 여주를 떠나라’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관공서도 식당 출입을 금기시하면서 이항진 타자화에 나섰다. 매출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식당 운영을 계속할 수 없었다. 결국 한옥마저 팔아 빚을 갚고 나니 남는 게 없었다. 두 내외는 인근 마을회관에서 월세 20만 원 내며 살았다. 그는 2012년 4대강범대위 상황실장으로 여주에서 서울로 출퇴근했다. “환경운동연합에서 월급으로 150만 원인가를 줬다. 우리 집사람이 막 입이 이렇게 찢어졌는데, 처음으로 돈을 가져왔다고. 그게 내 직장생활의 첫 번째 행복이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작은 기쁨을 소중히 하는 사람이었다. 
 
4대강사업의 강행 조성 이후 지역의 미래를 고민하는 그는 2014년 당시 야당인 민주당 시의원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시의회는 의장부터 대부분 당시 여당인 한나라당이었다. “야당, 여당 가리지 않고 사람과 주민 중심으로 풀어나갔다.”라는 게 그의 말이다. 주민 중심이 기본이었기에 여당 시의원과도 일 궁합이 잘 맞았다. 남한강 지킴이 환경운동가 시절 그는 남한강에 ‘여강 길’을 만들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 시인의 시처럼 길도 마찬가지였다. 강변 마을에서 마을로 연결되는 길과 산 속 없는 길 그리고 발목 깊이로 물이 찬 강변에 코스를 만들면서 여기에 역사, 문화, 생태적 의미를 부여했다. 4대강 싸움이 한창일 때 한 해 7천~8천 명이 여강길을 다녀갔고, 그가 직접 안내했다. 시의원 시절 그는 동료 시의원과 사람들을 조직해 한강 발원지부터 하구까지 개척했다. 직접 보름씩 걸으면서 길마다 의미를 부여했다. 2018년 그는 여주시장이 됐다. 강한 보수 성향 지역에서 첫 민주당 시장의 탄생이었다. 그는 ‘사람 중심 행복 여주’를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시정 활동을 펼쳤다.
 

이항진의 사람 중심 신뢰 행정

 
환경운동가에서 지역 행정을 총괄하는 시장이 된 지 4년, 그는 자신의 활동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약속 시간 전 여주시청 2층 시장실 앞에 도착했다. 이항진 시장이 함박웃음을 보이며 맞이해 준다. 독서광답게 그의 집무실에는 책이 한쪽 벽면을 가득 차 있다. 행정학부터 역사, 정치, 철학, 과학까지 분야도 다양했다. 그는 최근 『양자역학 수업』을 재밌게 읽었다며 적극 추천한다. 1시간 반 가까이 인터뷰 내 걸려 오는 전화에 수시로 중단했다가 다시 하기를 반복했지만, 이 시장 특유의 시원함과 유쾌함이 이어졌다. 때론 사람에 대한 철학적인 고민도 풀어냈다.
 
그는 “한 명의 시민이 점이라면 운동가는 그 점을 이어가는 사람이고, 시의원은 행정체계 내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이”라며 운동가와 시의원 역할을 설명했다. 시장 역할에 대해 그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똑같은 재료라도 누가, 어떻게 조리를 하느냐에 따라 맛은 천양지차다. 결국 그 재료와 음식 도구의 특성을 얼마나 파악하고 있는지, 불 조절 등 타이밍을 얼마나 잘 맞추는지가 핵심이다. 행정도 이와 같다는 말이다. 여기서 핵심이 사람 중심이다.
 
환경운동 관점에서 사람중심은 과도한 인간중심주의로도 비춰질 수 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삼각뿔을 보면 각 면에서 다른 면이 잘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정점에 올라갈수록 다른 면이 존재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면 앞으로 일을 하기 어렵다.”라며 통합적 관점을 강조했다. 사람 중심은 환경운동가 출신 이 시장이 현실 정치와 타협의 과정이도 하다. 또 사회적 약자, 미래세대, 비인간 존재에게 발생한 문제는 결국 사람이 만들었고, 이를 풀어내는 것도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런 관점에서 행정을 진행한 결과 4년 동안 이 시장 공약 이행율은 80%가 넘었다.
 
행정가에게 필요한 덕목은 위기관리 능력이다. 코로나19 상황이 발생하자 이 시장의 위기관리 능력이 드러났다. 그는 코로나19 확진자가 전국에서 50명이 발생하던 초기, 신속하게 검사할 수 있는 현장 PCR(중합효소연쇄반응) 기법을 전국 최초로 도입했다. 그는 이후 매일 확진자 통계 데이터를 확인하고 있고, 주변 경기도, 강원도 지역 지자체에 비해 여주시의 확진자 비율(천 명당)이 가장 낮게 나오고 있다.
 

공약 이행률 80%, 불필요 토목 예산 대폭 삭감

 
시장 첫해 시 예산 계획을 잡을 때 이 시장은 지역 내 대표적 토목 예산인 도로 부분을 대폭 삭감했다. 이유가 있었다. 여주시는 향후 18만 명의 인구가 머물 수 있도록 도로 등 인프라를 구축했다. 여주시 인구 통계 시작된 1960년대 11만800명이었고 중간에 인구가 감소했다가 이 시장 때 11만1800여 명으로 늘었다. 이 시장이 직접 통계 분석을 해 보니, 이런 추세라면 18만 명이 되기까지 산술적으로 3천 년이 걸린다는 계산이었다. 18만 명 용량 도로를 유지하는데 한 해 예산이 1600억 원이 들어갔다. 이 시장은 이를 900억 원까지 줄이고 700억 원은 다른 곳에 집행했다.
 
대표적으로 발달장애인 지원사업과 전통시장 재생 사업 등에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 시장은 임기 내 갈등관리 분야인 협상학과 석사 과정을 마쳤다. 갈등관리의 필요성은 환경운동가 시절부터 절실했다. 그가 지역 현안에 대해 사회적 합의와 갈등관리를 제안하자 주위에선 그를 회색분자로 취급했다고 한다. 싸움은 버틸 수 있었지만, 중요한 것 극한 대립은 문제해결에 도움이 안 될 수도 있다는 거다. 그는 “이 세상에서 갈등은 필연이지만 그 갈등을 평화적 길로 갈 건지 아니면 폭력적 길로 갈 건지 그것을 선택하는 주체는 인간이고 평화적 길로 가기 위한 노력이 갈등 해결의 노력이다”라는 말을 전했다. 
 
이 갈등관리 기법을 관내 전통 시장 재생사업 시행에 도입했고, 100여 개의 점포 주인들과 100% 합의에 이르렀다. 이 사례로 여주시는 중앙정부 우수 사례로 상까지 받았다. 이 시장은 “갈등 관리 기법을 해서 잘 된 케이스인데, 그 근저에는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라고 말했다. 
 
이 시장의 신뢰 기반 행정이 흔들릴 때도 있었다. 그것도 취임 직후에 발생했다. 전임 시장 때 관내 가스발전소 건립이 허가됐지만, 송전탑 연결 문제로 시끄러웠다. 이 시장 취임 후 3개월이  지났을 때 주민 대책위원장인 80대 할머니가 이 문제 해결을 요구하며 시장실 앞에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해결 못하면 시장 퇴임 운동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도 있었다. 여기에 지역 정치인 농간으로 지역 환경단체마저 이항진 시장 퇴진을 요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화가 날 법도 했을 것 같다. 주변 지인들은 상황을 곡해해 무조건 비판만하는 단체들에 볼멘소리를 내려했다. 이때 이 시장은 전임의 결정이었다는 억울함을 호소하기보다 “원래 시장이란 자리는 욕을 먹는 자리다. 욕을 먹지 않으려면 정치를 해선 안 된다.”라고 그들을 달랬다. 이 시장은 단식하는 할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도 어려운 상황에서 주민대책위 요구를 받아들여 재검토 작업을 벌이기도 했다. 
 
이 시장은 “감각을 확장해야 한다.”고 말했다. “혼자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를 봐야하고 반드시 제도에 있는지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 시장이 오는 6월 1일 지방선거에 재선 도전장을 냈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기 위해 감각의 확장을 고민하는 사람, 이항진의 새로운 도전을 응원한다.  
 
글 / 이철재 에코큐레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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