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공주 안은주를 위하여

2022년 5월 3일 안은주 씨가 사망한날, 여의도 옥시 앞에서 열린 추모 기자회견장 옥시싹싹 뉴가습기당번 옆에 국화가 놓였다
 
배구선수 출신 옥시 피해자, 두 번의 폐이식, 3년 4개월 19일간의 입원, 1774번째 사망신고자…. 안은주를 나타내는 말들이다.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를 다룬 영화, 『공기살인』이 그린 이야기보다 현실 속 안은주의 삶은 훨씬 극적이다. 영화로도 그려내기 힘든 이야기, 가습기살균제 참사의 현실이다. 
 
두 번째 폐이식 수술을 받은 후 급성 호흡곤란으로 목을 절개해 산소발생기를 넣었다. 그 후 2년 넘도록 안은주는 목소리를 잃었다. 안은주가 하고 싶었던 말들은 서너 권의 노트에 글로 적혔다. 2021년 8월 말 참사 10주기 때 병상의 그녀를 위해 비대면 영상 기자회견을 가졌다. 그녀가 힘겹게 몇 자 적어 보여준 글은 ‘옥시는 배상하라’, ‘문재인 대통령은 약속을 지켜라’였다. 
 
병상의 그녀에게 숨쉬기 어려운 고통에 말 못하는 고통이 더해졌고 2년 동안 코로나19로 인해 사람들과의 접촉이 제한되자 소통하지 못해 그녀는 절망했다. 매달 서너 번 찾아와 며칠씩 돌봐주던 친언니가 돌아갈 때마다 그녀는 입모양으로 ‘가지마’라고 호소했다. 
 
2020년 11월 입원중인 안은주 씨가 손글씨를 쓰고 있다
 
안은주는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육체적인 고통은 참을 수 있다고 자주 말했다. 그러나 가습기살균제가 가져온 경제적 어려움과 가족들이 겪는 문제들은 견디기 힘들어했다. 친정 식구들에게도 빚을 얻어야 했고 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엄마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현실을 손톱을 깨물며 견뎌내며 멍 들어가는 상황을 속상해했다. 
 
지난 11년 동안 많은 언론들이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했지만 모두 가습기살균제로 인한 건강 피해들을 다뤘다. 가습기살균제가 가져온 경제적 어려움, 가족관계의 파탄, 사회로부터의 고립과 같은 문제들은 주목받지 못했다. 피해자들과 가족들은 그런 문제들이 더 힘들었고 해결하기 어려웠다. 
 
생전에 안은주 씨는 가습기살균제 사용 전 실업배구 선수 시절 때의 건강했던 모습을 사진으로 보여줬다 
 
세월호 피해자와 유족들의 경우, 직접적인 배보상 이후 트라우마 센터 설립, 유족합창단, 공방활동 등 다양한 사회적 프로그램들의 중요성이 강조됐고 지금도 그것을 강조하는 목소리는 이어지고 있다. 그 목소리가 강조하는 프로그램들은 가습기살균제 참사 피해자들도 마찬가지로 절실하게 필요한 것들이다. 그러나 이 필요를 현실화시킬 첫 단추인 배보상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다른 지원은 꿈도 못 꾸는 상황이 11년째 계속되고 있다.   
   
보리공주. 그녀의 SNS닉네임이다. 필자는 배구의 영어 발리볼을 뜻하는 말인 줄 알았다. 그녀가 호남정유 실업팀의 선수였을 때 ‘경상도에서 온 보리문디’라면서 동료들이 붙여준 애칭이었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았다. 
 
보리공주 안은주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건강했던 운동선수 출신의 성인이 가습기살균제에 노출되어 쓰러졌고 12년을 투병하다 결국 세상을 등졌다. 처음엔 치료비도 나오지 않았고, 투쟁 끝에 만들어진 구제법으로 겨우 병원비와 간병비 일부가 지원됐다. 하지만 기다렸던 배보상은 끝내 이뤄지지 않았다. 옥시 사장이 국회에서 헛소리를 지껄일 때 강인했던 안은주의 삶의 끈은 풀려버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유족 등 시민들이 서울 여의도 옥시 앞에서 1774번째 가습기살균제 희생자 안은주 씨를 추모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5월 3일 새벽 3시경 신촌 세브란스 병원 지하 주차장으로 흰 천에 덮힌 그녀가 내려왔다. 2년 전 안은주처럼 떠났던 부인을 잃은 김태종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유족이 그녀를 기다렸고, SK 앞에서 텐트 농성를 하던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채경선 씨가 그녀를 맞았다. 3년 4개월 19일 만에 안은주는 차디찬 시신으로 병원을 나섰고 앰블란스에 실려 고향 함안으로 향했다. 
 
5월 5일 새벽 3시경 함안의 장례식장에 군복을 입은 한 사람이 들어섰다. ‘에구머니나’ 신음처럼 놀란 언니 안희주 씨가 일어섰다. 해군 하사로 근무중인 보리공주의 아들이 비보를 접하고 동해의 군함에서 내려와 달려온 것이다. 발인하는 날 새벽에 아들은 엄마의 마지막 문상객이 되었다. 
 
2022년 5월 4일, 경남 함안 장례식장의 안은주 씨 빈소 영정사진, 가습기살균제로 아프기 전에 찍은 사진으로 필자는 생전에 보지 못했던 건강한 시절의 안은주 씨 모습이다 
 
보리공주가 떠나는 날, 산마다 아카시아 꽃이 뒤덮였다. 거리의 이팝나무 가로수에는 하얀 꽃이 만개했다. 운구차는 그녀의 고향집을 방문했다. 그녀의 어머니는 황망한 표정으로 그녀가 좋아한 음식을 제사상에 올렸다. 잠시 후 그녀의 영정사진이 집을 나서자 노모는 물이 든 컵을 들고 뒤를 따랐다. 운구차가 길을 떠나자 노모는 물잔을 길가 모퉁이에 내려놓았다. 먼 길 가는 둘째 딸이 “목마르면 안 된다.”고 주는 물 한잔이었다. 
 
안은주 씨의 사망 이후 가습기살균제 가해 기업인 애경과 옥시 불매운동이 전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보리공주 안은주의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전국 242개 시민단체 회원들이 옥시애경 불매운동에 더욱 집중하고 있다. 전국 여러 지역의 버스터미널 앞에서, 대형마트 앞에서, 시청 앞에서 옥시애경 불매운동이 연일 이어진다. 
보리공주 안은주를 위한 최선의 추모는 옥시애경 불매운동이다.
 
글 사진 / 최예용 환경보건시민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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