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04] 땅이 살면 땅강아지가 산다

땅이 살면 땅강아지가 산다


내몰린 보호곤충, 땅강아지
필자가 땅강아지를 처음 만난 것은 초등학교 시절, 동네 친구들과 동네 한 모퉁이에서 땅따먹기
놀이를 하던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땅 위에 네모나게 큰 땅을 그리고 한 뼘만큼의 공간을 시작
으로 돌멩이를 손가락으로 튕겨 3번만에 내 땅 안으로 다시 돌아오면 그 나간만큼 땅을 먹어서
넓히는 놀이였다. 친구가 돌멩이를 튕겨 선을 긋는 동안, 그 옆으로 슬슬슬 지나가는 땅강아지
를 처음 발견하고 얼마나 신기했던지 손으로 잡아보고선 그 보들보들함에 놀랐다. 땅딸막한 체구
에, 또 얼마나 그 힘이 센지, 움켜진 손아귀 속에서 빠져 나오려고 손가락 사이를 마구 파헤치
는 듯한 느낌에 또 한번 깜짝 놀랐던 기억이 난다. 농촌에서 오래 살았던 사람들에게는 그야말
로 흙과 가장 가까운 곤충이 바로 땅강아지였을 거다. 나처럼 도회지에서 많은 시절을 보냈더라
도 70, 80년대의 서울에서만도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던 곤충이었다. 그랬던 땅강아지가
이제는 무척 보기 힘들어져 풀무치와 함께 서울시에서 지정한 보호곤충의 하나가 되었다. 근래
들어 땅강아지가 드물어진 원인에 대해 정확하게 분석된 바는 없지만 도시에서는 아스팔트와 시
멘트가 노출된 땅을 거의 다 덮으면서 토양을 근거지로 살아가는 땅강아지의 생활공간이 없어졌
다는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생각된다. 농촌에서는 변화된 농업문화가 역시 땅강아지가 사는 토
양의 오염을 촉진시키고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것이다. 즉, 화학비료와 각종 농약의 과다사용은 원
하는 단일작물 이외의 모든 생물을 몰살시키고 있다. 땅강아지는 사실, 생육조건이 그렇게 까다
로운 곤충이 아니다. 기본적으로 잡식성이기 때문에 유기질이 풍부한 땅속에서 각종 식물질, 식
물의 뿌리, 죽은 벌레, 지렁이 등을 먹고 살며 가끔 땅위로 올라와 어린싹을 갉아먹기도 한다.
이런 습성으로 인해 인삼을 재배하는 농가에서는 심각한 해충으로 취급받았고, 세계적으로도 땅
강아지는 해충으로 인식돼 가꾸는 잔디밭이나, 골프장, 어린 묘목 재배지에서 퇴출의 대상이 되
기도 했다. 우리나라에 살고 있는 땅강아지는 중국, 일본 등에서 살고 있는 동양계 종
(Gryllotalpa orientalis)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아프리카에 사는 종(Gryllotalpa africana)으
로 오인돼 왔다. 우리의 땅강아지는 동양계 이주민들과 함께 태평양을 건너 미국령 하와이 섬까
지 건너가서 분포하고 있다. 이들이 이렇게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수륙양용의 전천후 장
갑차 같은 신체 특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하늘밥도둑, 꿀도둑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땅강아지가 부엌 불빛에 날아 들어와 형광등 주변을 맴도는 것을 본 기억
이 있을 것이다. 이북에서는 땅강아지의 다른 이름으로 ‘하늘밥도둑’ 또는 지방에 따라 ‘꿀도
둑’이라 하는 곳도 있다. 부엌으로 날아 들어온 녀석들이 밥이라든가, 꿀이라든가 뭔가 훔쳐먹
으러 들어오지 않았겠느냐 하는 옛사람들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들이 날기만
하느냐? 아니다 헤엄도 아주 잘 친다. 봄철에 논둑에서 논이랑을 삽으로 뒤집어 개간을 하고 있
으면 땅굴 속에 숨어 있던 땅강아지가 흙과 함께 물에 빠져 달아나려고 능숙하게 헤엄치는 광경
을 볼 수 있다. 물, 공중, 땅속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는 것이 땅강아지의 장점이다. 땅강아지
가 살고 있는 땅굴은 의외로 규모가 커서 절단해 보면 수평, 수직의 복잡한 굴 구조가 드러난
다. 이들 영명(英名)의 뜻이 ‘두더지 귀뚜라미(mole-cricket)’라는 것만 보아도 척추동물인 두
더지가 땅을 파는 것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땅강아지는 생애의 대부분을 자신의 굴속에서, 먹이
를 먹고 짝을 유인하며 새끼를 키우고 살아간다. 땅강아지의 앞다리는 땅파기 좋게 넓적한 날을
가진 삽의 구조와 똑같아서 ‘게발두더지’라는 별명도 있다. 앞다리로는 흙을 헤치며 둥글고 넓
적한 앞가슴등판으로 터널의 벽을 다듬는다. 다리는 짧아서 좁은 굴속에서도 앞뒤로 이동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다. 수컷은 늦봄에서 가을 사이에 굴속에서 귀뚜라미처럼 사랑의 세레나데
를 부르는데, 이렇게 소리를 낼 수 있는 앞날개의 구조적 차이로 암수를 쉽게 구별할 수 있다.
수컷이 우는 굴 입구의 터널은 소리가 밖으로 확장되기 쉽도록 뿔피리 형태로 만들어져 있으며
이는 멀리서도 암컷이 잘 찾아오게 하기 위함이다. 필자도 밤중에 땅강아지 소리를 듣고 몇 번이
나 굴 입구를 발견했지만, 번번이 깊숙한 수직 방향의 굴 아래로 달아나 버려 놓친 적이 많다.
땅강아지의 또 다른 이름인 ‘돌도래’,‘도루래’는 이들의 울음소리에서 유래한다. 하지만, 실
제 땅강아지의 울음소리는 ‘삐이’하고 매우 단조롭다. 아마 이들 이름은 귀뚜라미류가 내는 소
리를 갖다 붙인 게 아닌가 싶다. 교미한 암컷은 정성스레 알집을 만들고 마치 집게벌레 암컷이
하는 것처럼 애벌레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 돌보는 모성애를 갖고 있다. 어린 애벌레는 앞다리
가 어미처럼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에 어미의 초기 양육이 필요하며, 여덟번 허물을 벗으면 비로
소 어른이 된다. 초봄에 태어난 개체는 성충으로, 늦여름에 태어난 개체는 유충으로 겨울을 나
며 다음해 봄부터 활동을 재개한다. 이처럼 생물학적으로 재미있는 탐구 대상이자, 우리 정서의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땅강아지가 줄어들고 있는 현실 속에서 필자는 도시의 더 많은 녹색공간
의 확보와 농촌에서는 생태계 다수의 구성원들을 함께 살리는 유기농업으로의 전환을 희망한다.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우리가 지저분하게 여기는 흙 속에서도 전혀 먼지를 묻히지 않고 살아가
는 땅강아지의 고운 촉감을 계속 느끼게 해 주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태우 pulmuchi@sungshin.ac.kr
『세밀화로 그린 곤충도감』의 저자,
성신여자대학교 생물학과 동물분류연구실 연구원
* 관리자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02-12 2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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