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별 없이 떠난 먹황새 러시아에서 만나던 날

사방이 확 트인 초원의 습지서 먹이활동을 하던 먹황새가 우아한 자태를 뽐내며 날고 있다. 드물게 겨울에만 우리나라를 찾는 새라 들꽃이 핀 푸른 초원을 배경으로 나는 모습이 너무 낯선 풍경이었다
 
국내에서 번식하던 황새(천연기념물 제199호)의 마지막 모습은 잘 알려진 대로 1971년 충북 음성 감나무 위 둥지였다. 그해 밀렵꾼이 쏜 총에 짝을 잃은 암컷을 마지막으로 텃새로서의 황새는 국내에서 사라졌다. 
 
같은 황새과 먹황새(천연기념물 제200호)는 황새가 총에 맞기 3년 전인 1968년까지 경북 안동 낙동강 상류 절벽에서 번식했다고 한다. 안동에서 사진관을 운영하던 윤종호 씨가 1964년 7월 경북 안동 도산면 가송리 학소대 절벽 둥지에서 찍은 사진이 남아 있기도 하다. 낙동강 학소대 위의 먹황새는 사진만 한 장 남기고 홀연히 우리 곁을 떠났다. 
 
2015년 7월 러시아 알타이 지역의 맹금을 찾아 나선 탐조 여행에서 작별 없이 떠났던 먹황새 가족을 만났다. 러시아 알타이 주의 코시하 마을은 인적이 드물었다. 하늘로 쭉쭉 뻗은 시베리아의 자작나무와 소나무가 울창한 숲을 이루고, 마을 옆 하천은 맑고 수심이 얕았다. 어른 허리만큼 자라 우거진 풀 한가운데 자란 소나무 위에 둥지가 있었다.
 
어린 새는 모두 네 마리. 머리와 멱, 날개 끝에 이제 막 거뭇거뭇한 깃털이 나기 시작해 제법 ‘먹’황새의 모습을 갖춰가고 있었다. 지름이 1.5미터 크기의 나무 둥지 위에서 어린 새들은 특유의 길고 커다란 부리를 크게 벌리며 어미 새를 기다리고 있었다. 현지 전문가들에 따르면 먹황새는 나무가 우거진 숲에서도 쉽게 눈에 띄지만, 큰 덩치와 길고 튼튼한 부리 덕분에 포식자들로부터 스스로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한다.   
 
몸집 큰 먹황새의 비행 기술도 놀라웠다. 양 날개를 펼치면 길이가 150센티미터가 넘는 대형 조류이지만 울창한 숲을 능숙하게 날아다녔다. 사람들이 어미 새를 기다리며 둥지 옆에 위장막을 설치하자, 불청객에 놀란 어미 새는 자신의 모습은 짙은 나무 그림자 뒤에 감추고 둥지서 멀리 떨어져 나무와 나무 사이를 기민하게 움직였다. 
 
짧은 여름이지만 시베리아의 쇠파리와 모기는 제철 만난 듯했다. 위장막에 숨어 있으면서 얼마를 시달렸을까? 해질 무렵 경계를 하던 수컷과 반대편 숲에 있던 암컷이 둥지에 앉으며 커다란 날개를 접었다. 침입자를 경계하면서도 입엔 주변 하천서 사냥한 먹이가 가득 차 있었다. 둥지에 앉은 어미는 입에서 둥지 바닥으로 반쯤 소화된 먹이를 게워내듯 쏟아 냈다. 급히 새끼를 먹인 어미는 잠시 둥지 위에서 주변을 둘러보고는 다시 숲 속으로 날아가 사라졌다. 
 
다음날 정오 무렵까지 어미 새는 더 이상 새끼에게 날아오지 않았지만 여행 중 초원과 습지에서 사냥을 하거나 숲으로 날아가는 모습은 여러 번 더 눈에 띄었다. 
 
먹황새는 키가 95~100센티미터로 아주 크지만 경계심이 강한 새다. 가슴과 배의 흰 부분과 몸 대부분의 녹색 광택을 띠는 검은색 덕분에 자연에서 쉽게 눈에 띄는 외모를 가졌지만 국내에서 보기가 쉽지 않다. 전남 함평 대동저수지, 화순 동북댐 상류, 경북 내성천 상류에 아주 적은 개체수가 드물게 월동하고 사람을 곁에 두지 않으려 한다.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타깝게 사라져 갔던 황새가 이 땅에서 사라진 지 21년 만에 돌아온다고 한다. 9월에 충남 예산서 황새의 야생복귀를 위해 인공 사육한 개체를 방사한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시골 나무에 둥지를 틀던 황새와 달리 험준한 절벽이나 깊은 숲에 살던 먹황새는 주변서 눈에 쉽게 띄지 않았다. 서식지가 파괴되어 떠났지만 사람들은 한동안 이들이 떠난 줄도 모르고 있었다. 
 
황새의 야생 복귀로 떠들썩할 올 가을, 영주댐이 담수를 시작하면 수줍은 친구 먹황새의 월동지 내성천도 조용히 물에 잠긴다.
 
 
 
자작나무와 소나무 가지가 울창한 숲 속 먹황새 둥지. 아름드리 소나무 가지에 지은 둥지 높이는 20여 미터 정도다
 
 
둥지의 어린 새의 다양한 표정
 
 
둥지에 내려앉은 어미 새는 곧 목안에 든 먹이를 토해냈다. 어린 새들이 주린 배를 채우는 동안 어미 새가 둥지를 떠나기 전 주위를 살피고 있다
 

글·사진 김진수 『한겨레21』 기자 jsk392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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